미국에서 일어난 최대의 정치 스캔의 시작
1972~1974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최대의 정치 스캔들.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재선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비밀공작단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다.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스스로 물러난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다. 또한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 사례의 하나다.
워터게이트라는 이름 때문에 물과 관련된 비리나 사건사고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워터게이트는 단순히 빌딩 이름일 뿐이다.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된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6월 17일 밤 늦은 시각 민주당전국위원회(DNC)[2]가 입주해있던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의 경비원은 괴한이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호텔에 출동한 경찰은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 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임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단순 절도범에 어울리지 않는 거물급 변호사가 나타나서 이들을 변호하고, 일당 중 1명이 가지고 있던 수첩에서 백악관 보좌관인 하워드 헌트의 전화번호가 발견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 재선위원회를 만들어서 차기 대선을 준비중이었는데, 하워드 헌트가 바로 재선위원회의 실무자. 게다가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3주전에도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했으며, 이번 침입은 고장난 도청기를 교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게 드러났다. 이게 단순절도 사건이 아니라는 의혹이 커지자, FBI가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닉슨대통령의 거짓말의 나비 효과
FBI가 개입할 정도로 일이 커지자 닉슨과 주변 측근 인사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시작한다. 닉슨은 우선 CIA에 FBI의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최대한 은폐하라고 지시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당시 CIA 국장이 훗날 증언하기론 은폐, 특히 증인 매수 및 입 단속에 필요한 돈을 CIA 자체 자금으로 처리하라는 것이 닉슨 측의 명령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CIA 자금 이외에는 마땅히 닉슨이 남들 눈에 안 띄게 쓸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CIA로서도 이미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함부로 돈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증인 매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로 조지 맥거번이 선출되고 닉슨과의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워터게이트 사건은 점점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괴한들이 침입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는 별다른 기밀문서도 없었기 때문에 맥거번 후보나 민주당쪽에서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면서 이 사건을 크게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사실 당시 민주당은 험프리와 맥거번의 대선후보 경선이 너무 치열했던 나머지 당이 쪼개져 있었고, 부통령 후보가 중도에 교체되는 등[5] 난장판이었다. 이때문에 일관된 선거전략을 세우지도 못했다.[6] 결국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은 선거인단 538표중 520표를 쓸어가는 압승을 거뒀다. 유권자 득표율에서도 60%를 넘어서는 대승이었다. 사실상 대통령 선거 시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아무도 신경 안썼단 얘기. 언론들도 일반적인 선거보도에만 열을 올렸지,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미 신문지면 구석으로 밀려난지 오래였다. 다만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건을 계속 보도했는데, 별다른 여론의 반향은 없었다. 오히려 친 닉슨 성향의 언론들은 워싱턴 포스트를 가짜뉴스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을 덮기위해 더해지는 거짓들
대선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 수사와 검사의 기소를 거쳐서 재판끝에 1973년 1월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FBI는 범인들의 배후에 관해서 계속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닉슨이 두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할 무렵에 상원 청문회가 열려 전국에 텔레비전 생중계가 되었다. 그리고 청문회에 나온 알렉산더 버터필드 前 대통령 부보좌관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는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비밀장치가 있으며, 닉슨 대통령이 사건의 은폐 공작에 관여하는 내용도 녹음되었다는 핵폭탄급 증언을 해버린다. 특별검사와 상원 특별위원회는 녹음 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했지만, 닉슨은 '행정 특권'을 이유로 들어 거절한다.
행정 특권이란 미국에서 행정부 인사들에게 보장하는 일종의 비밀 보장 특권을 뜻한다. 삼권분립에 의해 사법부, 의회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이르고 있다. 참고로 이게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대응되어 보장을 받고 있으며, 민정수석이나 비서실장에게 관례적으로 보장되어온 권리였다.
또한 닉슨은 반대파에 대해 과할 정도로 적대감을 느끼는 성격이었다. 따로 자신의 정적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관리했다는 게 청문회에서 폭로될 정도로 철두철미했다.[30] '침묵하는 다수'라는 표현으로 도덕적 가치를 내세우며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 낸 닉슨의 대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도청 테이프와 청문 과정에서 공개된 그의 본색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마구 씹어대고 공권력을 동원해서 사찰하는 전형적인 썩어빠진 정치인이었다.[31] 결국 녹취록으로 폭로된 닉슨의 인간적, 정치적인 추악함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서 닉슨은 그토록 애지중지한 지지 기반을 잃게 되었다.
거기다 닉슨은 서민 출신인데다 하버드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입학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서러운 기억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닉슨은 자신과 대비되게 엄청난 부자 가문 출신에다가 공부를 못했는데도, 아버지 빽으로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상대 후보 존 F. 케네디에 대한 반감을 갖는 등, 열등감이 심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닉슨의 '인간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다룬 영화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인 '닉슨'이다.
진실을 파헤친 사람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이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파헤쳐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에게 중요한 단서를 계속 제공한 정보원이 있었는데 밥 우드워드는 이 사람을 '깊은 목구멍(Deep Throat)'이라고 칭했다. 깊은 목구멍의 정체는 그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다가 2005년에야 밝혀지는데, 그 정체는 바로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마크 펠트(William Mark Felt, 1913 ~ 2008)였다. 펠트와 연락한 사람은 밥 우드워드였는데 둘의 인연이 기이하다. 우드워드가 해군 장교 재직 중에 백악관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펠트를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조지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동창이었던 둘은 서로 친해졌고 펠트는 이후 우드워드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장교 제대 후 듣보잡 신문사에 있던 우드워드에게 중앙지로 가라고 조언해준 사람도 펠트였다고. 펠트가 우드워드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과정은 첩보극을 연상시키게 한다. 우드워드는 펠트와 만나고 싶을 때 자기 집 창문에 빨간 깃발을 꽂은 화분을 놓았고 펠트가 이를 보면 미리 약속한 지하 주차장에서 다음 날 새벽 2시에 만났다고 한다. 만약 펠트가 우드워드를 만나고자 할 때에는 뉴욕 타임즈의 20면에 시계를 그려놓았다고 한다. 우드워드는 이에 대해 펠트가 어떻게 그려놓을 수 있었는지 자신은 알지 못했다고 책에서 언급한 바 있다. 밥 우드워드가 정보를 물어오면 칼 번스타인이 주로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종종 우드워드가 펠트한테 확인을 받기도 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이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의 공로로 무명의 신참 기자에서 일약 전 미국인이 아는 대기자가 되었다. 이 2명은 1971년 워터게이트 건물 침입 사건부터 1974년 닉슨 사임까지 무려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내었다. 이런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한 장기간의 심층 취재와 보도는 매일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속보 경쟁만 하고 있던 미국 신문, 방송에 일대 경종을 울리면서 탐사보도 저널리즘[32]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엔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펠트 이외에도 당시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벤저민 크라운실드 브래들리(Benjamin Crowninshield Bradlee, 1921 ~ 2014)[33]와 사주였던 캐서린 마이어 그레이엄(Katharine Meyer Graham, 1917 ~ 2001)[34]도 큰 역할을 했다. 브래들리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사건 기사를 냉철하게 편집해 실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조율해냈으며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붕괴를 각오하고 두 기자를 보호하며 외풍에 맞섰다. 더군다나 이전에 워싱턴 포스트는 닉슨의 가족들을 취재하면서 무단침입(...)을 통해 사진을 찍어가기도 해서 닉슨에게 반감을 사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담은 펜타곤 보고서를 뉴욕 타임즈와 함께 보도하여 닉슨이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백악관에 절대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닉슨 행정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35] 실제로 닉슨 행정부에서는 워싱턴 포스트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 조사는 물론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해왔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30년 동안이나 정보제공자를 보호한 워싱턴 포스트는 언론사의 귀감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그리고 이 사건의 교훈은 내부고발자의 중요성도 다시 느끼게 해준다는 것. 또한 이 사건으로 일개 지방 언론사에 불과했던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주류 언론이 되었다.
사건 후
닉슨 사임 이후 2명이 저술한 책을 바탕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1976년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36] 로버트 레드포드(밥 우드워드 역)와 더스틴 호프먼(칼 번스타인 역)이 두 주인공을 맡아서 열연했다. 이 영화 자체에서는 대통령이 발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사실상의 행정부의 승리와 함께 엿 먹는 것처럼 그리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닉슨의 하야를 이끌어낼 증거가 발견되어서 하야했다'는 식의 자막이 뜬다. 이 영화는 1977년 4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올랐으나, 상은 록키한테 돌아갔다. 비록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으며 그 해 최다수상을 기록하긴 했지만 남우조연상(제이슨 로바드)를 제외하면 각색상, 음향상, 미술상 등 주요 부문과는 거리가 있는 상들이었다. 그리고 이 때 같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가 쓴 잔을 마신 다른 네트워크와 택시 드라이버다.
하지만 대특종을 낚은 두 사람의 길은 엇갈렸다. 우드워드는 승승장구한 반면 번스타인은 1980년대 초 거짓 편집 사진 사건으로 포스트지에서 물러났다. 물론 강연과 기고 등으로 번스타인도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우드워드의 막강한 영향력에 비하자면 번스타인은 초라하다는 것이 일반적.[38] 이후 한 동안 잠잠했던 번스타인은 이후 2020년에는 자신의 트위터로 트럼프를 대통령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무시하면서 정작 트럼프가 잘못된 일을 할 때는 앞장서서 찬성하거나 침묵하는 공화당을 비난하며 해당 발언을 한 공화당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우드워드는 이후 누구도 그의 인터뷰 요청을 쉽게 거부하지 못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의 대통령들이 재임 중 한 번씩은 그와 단독 인터뷰를 가지는게 관례가 되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대통령들을 인터뷰해 낸 책들을 포함, 총 8권 이상의 책을 발간하였다.[39]
**게이트 사건이라는 표현의 시작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형 비리 사건에는 '~게이트'라는 말이 일종의 접미사로 쓰이게 되었다.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 기업,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조직적인 은폐, 조작 및 비리가 저질러진 경우에도 쓰인다. 게임언론의 게이머게이트, 애플의 배터리게이트,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인텔의 CPU게이트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테이프에 과연 도청 지시 사항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영원한 논쟁거리이다. 왜냐하면 닉슨이 하야함으로서 테이프에 실린 내용이 전부 공개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40] 다만 여러 정황 증거를 통해서 확실히 도청 관련 이야기가 있다는 건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문제, 즉 위에 설명된 여러 더러운 정치 공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같이 들어있어서[41] 닉슨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고 한다.[42]
일단 당시 소위 스모킹 건이라고 불린 테이프를 들어본 닉슨 본인은 자신의 결백이 증명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아이러니라고 할만 하다. 다만 이 스모킹 건 녹취록은 닉슨이 도청을 지시했거나 사전에 알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하지만 사건 발생 직후 인멸을 공모하는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이게 공개되고 닉슨은 "믿지 못할 인간", "지지자들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인간"으로 몰러 큰 타격을 입고 사임하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호텔은 지금도 호텔로 운영중인데, 워터게이트 바로 옆 건물이 닉슨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존 F 캐네디를 기념하기 위한 존 F 케네디 센터가 있다. 심지어 완공도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 몇달전인 1971년 10월 8일에 완공되었다.
NBC방송이 워터게이트 45주년 특별 보도로 특검팀 메모를 공개하였는데,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베트남 전쟁 관련 기밀 문건을 공개한 폭로자와 반전(反戰) 시위대에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한다.#
75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2018년에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라는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책을 내놓았다.[43] 여기서 그는 트럼프를 한마디로 적대심에 가득찬 닉슨이라고 평가했으며, 러시아 게이트를 워터게이트에 견주는 평가를 하였다. 번스타인 기자는 CNN의 객원 논객으로 틈틈이 출연하면서 역시 트럼프를 닉슨보다 더하다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2019년 12월 28일. 방송계 최고 권위 ‘피버디상’을 받았던 변호사 출신 기자 프레드 그레이엄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로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도 영향 받았었는데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했던 닉슨과 다르게 유감성명을 받아들였다.
여러 영화의 소재가 된 워터게이트
위에서 언급한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있다.
1995년작 영화 '닉슨'에서 닉슨의 전반적인 생애를 다루긴 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꽤 비중있게 나온다. 영화의 시작이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쟁점화되는 와중에 불꺼진 백악관안에서 닉슨이 혼자 관련 보고서를 읽는 모습으로 시작하여 하야를 결심한 뒤 벽난로 앞에서 흐느껴 울며 기도를 하고 이후 케네디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이 사건이 유머러스하게 풍자된다. 유명인이 되어 닉슨을 만난 검프가 그의 배려로 워터게이트 호텔에 묵게 되는데, 밤에 자기 방 맞은편의 객실의 창문을 통해 괴한 몇 명이 형광등은 안 켜고 손전등으로 방을 이리저리 뒤지는 걸 발견한다. 검프는 그 방이 정전돼서 그러는 줄 알고, 나름 배려해준답시고 프런트에 전화해서 '제 맞은편 방이 정전된 것 같은데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사건은 모두가 아는대로 진행된다.
왓치맨에선 사건이 은폐되었고 닉슨이 20년이나 대통령을 해먹고 있다. 코미디언이 현실에서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을 취재하고 폭로했던 기자들인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을 처리할 때가 재밌었다고 파티장에서 낄낄거리는 장면이 있다.
성룡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 2에서 잠깐 언급된다. 폭파범의 협박전화를 도청하려고 주인공이 반장과 하는 이야기가 '미국 대통령도 도청하다가 물러났잖아요'라고 나온다.
조지 클루니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로 계획 중이다.
2017년 내부고발자 "마크 펠트"를 다룬 영화 《마크 펠트:백악관을 무너뜨린 사나이》(Mark Felt: The Man Who Brought Down the White House)가 나왔다. 주연 마크 펠트 역할은 리암 니슨, 부인 오드리 펠트 역은 다이앤 레인이 맡았다.[44]
《더 포스트》에서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주제이나, 결말에서 캐서린 그레이엄이 "이런 일은 다신 감당 못할 것 같다."고 말한 후 워터게이트 호텔 경비원이 침입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며 끝난다.
NBC의 드라마 굿 플레이스 1-9화에서 악마들이 노래방 기기로 부르는 노래 중 하나로 나온다. 곡명은 닉슨 테이프... 다른 라인업으로는 무솔리니 연설, 멜 깁슨의 비하 발언 등 제정신은 아니다.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시크릿 엠파이어 에피소드에 영향을 주었다.[45] 여기서 악당 조직인 시크릿 엠파이어의 리더가 캡틴 앞에서 두건을 벗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정확히 누구인지는 묘사되지 않는다.[46] 단지 캡틴이 그의 정체를 보고 경악을 하고 리더가 자신은 더욱 더 많은 힘을 원했다는 얘기만 하고 자살하는 장면만 나온다. 워터게이트 사건 즈음에 나온 에피소드라 닉슨과 워터게이트를 풍자하기 위해 쓴 에피소드라고 한다.
보드게임 《워터게이트》로도 나왔다. 사건을 은폐하고 임기를 마치려는 닉슨 측과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인 측으로 플레이하는 2인용 게임이다. 닉슨 측은 각종 카드를 활용해 증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정보 말이 판에 꼽히면서 진상에 다가가는 것을 중간에 끊고, 언론인들은 반대로 내부고발자와 언론인들을 엮어가며 판에서 정보 말로 트리를 구성해내야 한다. 2020년에 정식 한글판이 출시되었다.
2022년, 미국 starz 채널에서 해당 사건을 다룬 개스터(Gaslit)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같은 해 대통령들의 영부인을 다룬 드라마인 '퍼스트 레이디'에서 역시 워터 게이트 사건이 다뤄졌다.
이상 위키디피아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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